요하네스 브람스는 낭만주의 시대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고전주의의 형식미와 균형성을 의식적으로 계승한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이 지닌 위상을 무겁게 받아들였던 그는, 장대한 감정의 분출보다는 음악 내부의 질서와 구조를 중시하며 “고전적 낭만주의”라는 독자적 미학을 구축하였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단지 과거의 반복이 아닌, 고전적 원리에 기반한 새로운 감성의 표현이었다. 본문에서는 그의 교향곡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고전적 전통과 낭만적 정서를 결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후대 음악사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고전과 낭만 사이에서: 브람스의 예술적 좌표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였지만, 그 정체성은 고전주의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형성되었다. 베토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던 19세기 중엽, 젊은 브람스에게 교향곡이라는 장르는 단순한 작곡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사 전체를 관통하는 예술적 유산에 대한 응답**이자, **시대의 감성과 내면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의 산물이기도 했다. 브람스는 고전주의의 형식을 ‘과거의 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낭만주의의 격정과 충돌하는 감정을 질서 있게 담아낼 수 있는 **예술적 용기와 통찰의 수단**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감정 표현보다는, 내면의 갈등과 정서를 응축시킨 구조미 속에서 **절제된 감성의 미학**을 구현하였다. 특히 그의 교향곡 네 편은 모두 독자적인 음악 언어를 바탕으로 고전적 형식을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브람스는 단순히 베토벤을 흉내낸 것이 아니라, **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로써 그는 “베토벤 이후 최초로 진정한 교향곡 작곡가”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본 글에서는 그의 교향곡 전반에 깃든 고전적 회귀의 의도와, 이를 통해 그가 어떻게 낭만주의의 중심에서 독창적인 예술 미학을 구현했는지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형식 속에 담긴 감정: 브람스 교향곡의 고전적 정신
■ 제1교향곡 Op.68 – “베토벤의 열 번째” 20년간의 고뇌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은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외부의 기대에 정면으로 응답한 작품이다. 1악장은 무거운 코다이풍의 서주로 시작되며,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강렬한 대위법적 진행과 긴장감 넘치는 하모니**를 통해 고전주의 형식 안에 낭만적 열정을 주입한다. 마지막 악장에 등장하는 코랄 선율은 베토벤 제9번 교향곡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되지만, 브람스만의 색채로 탈바꿈되어 있다.
■ 제2교향곡 Op.73 – 목가적 조화의 미학 첫 교향곡의 어두움과 대비되는 이 작품은 **보다 밝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이 즐겨 쓰던 명확한 주제 선율과 간결한 악장 구조가 유지되지만, 브람스는 여기에 **섬세한 색채와 악기 배치의 정교함**을 더하여, 목가적 풍경화 같은 음악을 창조해냈다.
■ 제3교향곡 Op.90 – 자유와 자기 절제 이 교향곡은 F-A-F 음형(“Frei aber froh”, 자유롭지만 즐겁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적 신념과 철학을 음악적 모토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곡은 서정성과 드라마, 긴장과 해소의 균형이 탁월하며, 고전적 주제 발전 기법과 낭만주의적 화성의 교묘한 결합이 돋보인다.
■ 제4교향곡 Op.98 – 고전의 정점, 낭만의 완성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은 **형식의 극대화와 감정의 응축**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정교한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악장은 **바흐풍의 파사칼리아(샤콘느)** 형식으로 구성되어, 주제의 변주와 구조적 완성도가 탁월하다. 고전적 형식과 낭만적 정서가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된 이 작품은 브람스 교향곡 예술의 절정을 이룬다.
■ 형식과 자유의 조화 브람스의 교향곡은 전반적으로 고전적 형식(소나타, 변주곡, 푸가 등)을 따르지만, 그것은 과거의 반복이 아닌 **자기 해석의 결과물**이다. 그는 형식을 통해 감정을 질서 있게 구성하고, 악기 간의 균형, 조성 간의 전이, 리듬의 응집 등을 통해 **심오한 내면의 정서를 음악으로 번역**하였다.
고전을 향한 회귀, 미래를 향한 사유
브람스의 교향곡은 낭만주의의 한복판에서 고전주의를 향한 ‘회귀’가 아닌, 오히려 **그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음악 언어를 창조한 진보적 시도**였다. 그는 고전의 틀 안에 낭만주의적 감정을 담되, **그 감정을 절제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적 음악 세계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구조는 감정의 질서를 위한 도구”라는 음악적 철학으로 읽을 수 있다. 브람스는 격정적으로 흐르는 시대의 감성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예술의 내적 일관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고전적 미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였다. 오늘날 브람스의 교향곡은 여전히 수많은 지휘자와 청중의 사랑을 받으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미학적 다리**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가 남긴 네 개의 교향곡은 단지 음악적 업적을 넘어, **예술이 감정과 형식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자 모범이다. 브람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전주의를 다시 불러냈고, 그로써 낭만주의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것이 바로 ‘고전 회귀의 미학’이며, 그 미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