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는 낭만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지적 교류의 산물이었다. 이 글은 바그너의 음악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 이론을 어떻게 흡수하고 예술로 구현했는지를 분석하며, 철학과 음악이 예술적 깊이에서 어떻게 만나고 확장되었는지를 고찰한다. 두 사상의 접점은 단지 이론적 유사성을 넘어서, 예술의 본질과 존재론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철학이 음악을 만났을 때 – 바그너와 쇼펜하우어의 내면적 공명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단지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극 이론인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을 주장하며, 예술의 총합적 가능성을 탐구한 철학적 예술가였다. 그의 음악은 극적이며 서사적이고, 고도로 상징적이면서도 정서적으로 밀도 높은 감정 구조를 지닌다. 그러나 바그너 음악의 심층적 이해를 위해서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철학을 살펴보아야 한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1854년 처음 접한 뒤, 철저히 그의 미학에 감화되었고 이후의 작품들은 그 철학적 사유의 실질적 구현물로 해석된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를 ‘현상’(표상)과 그 배후에 있는 ‘의지’라는 두 층위로 구분했다. 그는 음악을 예술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았으며, 언어나 개념이 아닌 직접적인 정서의 표현, 즉 의지 자체의 구현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문학 중심적 예술 인식에서 음악을 새로운 위치로 끌어올리는 혁신적 사유였다. 바그너는 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받아들여, 자신의 오페라가 단순한 극이 아닌 의지와 고통, 구원이라는 존재론적 주제를 다루는 통로로 기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적 교류는 바그너의 음악극 후기에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니벨룽의 반지> 등은 단순한 서사 전달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고통, 구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확장된다. 본 글은 바그너와 쇼펜하우어의 교차점에서 음악과 철학이 어떻게 서로를 해석하고 심화시켰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음악은 의지의 반영인가 – 쇼펜하우어 철학과 바그너 음악의 융합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통해 인간이 ‘의지’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음악은 ‘표상’을 넘어서 ‘의지’ 그 자체를 직접 표현하는 유일한 예술이다. 회화나 조각, 문학은 구체적 형상과 개념을 매개로 하지만, 음악은 시간 속에서 추상적 구조를 통해 직접 의지를 반영한다. 이 철학은 바그너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음악극을 단순한 서사 전달이 아닌, 존재론적 고통과 구원의 여정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1865)는 이러한 사상의 결정체로 불린다. 이 작품은 단지 비극적 사랑을 다룬 오페라가 아니라, ‘욕망의 의지’와 ‘죽음을 통한 해방’이라는 쇼펜하우어적 테제를 음악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특히 트리스탄 화성(Tristan chord)이라 불리는 불협의 모호한 코드 진행은 끊임없는 긴장과 미해결성을 통해 청자를 욕망의 미로 속으로 끌어들인다. 해방은 오직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은 욕망과 구원의 절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파르지팔>(1882) 또한 의지의 정화와 구원의 서사를 극단적으로 전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순수한 어리석음의 전형인 파르지팔은 세계의 고통과 죄를 통찰하며, 성배의 수호자로 거듭난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의지의 본질로 보았고, 고통을 인식한 자만이 자기를 부정하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르지팔>은 이 철학을 완벽히 계승한 작품으로, 기독교적 구속과 동양적 해탈 사상이 융합된 상징적 오페라로 평가받는다. 한편, 바그너는 초기에는 헤겔이나 피히테의 낙관적 역사관과 자유 의지 철학에 매료되었지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접한 이후 자신의 예술이 단순한 ‘진보’가 아닌 ‘내면의 진실’과 ‘고통의 본질’을 표현해야 한다는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러한 전환은 그의 음악이 이전보다 더욱 응축되고 상징적이며, 감정의 파동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바그너는 음악이 단지 배경이나 장식이 아니라,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언급한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세계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명제와 정확히 맞닿는다.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가 아닌, 등장인물의 내면과 운명을 암시하는 ‘무의식의 언어’가 되었다. 이처럼 쇼펜하우어 철학은 바그너의 예술 전체를 변형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예술은 철학을 어떻게 구현하는가 – 바그너와 쇼펜하우어의 유산
바그너와 쇼펜하우어의 교차는 단순한 철학자와 예술가의 만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이 예술을 통해 감각화되고, 예술이 철학을 통해 존재론적 깊이를 획득한 사례였다. 바그너의 후기 음악극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단순히 인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시간과 음의 흐름으로 번역한 실질적 사유의 공간이다. 그는 ‘들리는 철학’을 만들어냈고, 음악은 더 이상 장르가 아닌 존재를 사유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바그너의 음악은 수많은 해석을 낳는다. 그것이 나치즘과 결부된 정치적 논쟁이든, 후기 낭만주의의 절정이든 간에, 그 중심에는 늘 철학적 사유가 존재한다. 쇼펜하우어의 ‘고통을 통한 의지 부정’이라는 테제는 바그너의 ‘죽음과 구원’, ‘욕망과 해탈’이라는 주제 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이는 현대 예술이 추구해야 할 심층성과 통합성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전범이 된다. 또한 이 둘의 만남은 ‘예술이 철학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세계의 본질을 이성적으로 해명하려고 했다면, 바그너는 음악을 통해 세계의 고통과 욕망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형식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두 방식의 차이를 상징한다. 논리적 사유와 감각적 직관은, 이 만남을 통해 하나의 궤도로 통합된다. 결국,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는 예술과 철학이 각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를 확장시키며 새로운 존재론적 감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교차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단순히 귀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열어준 것이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규정했고,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존재와 고통, 그리고 구원의 본질을 다시 사유하게 된다.